사람을 사랑하며
이 땅에 살아가면서 무언가 눈에 띄는 일을 하기보다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삶을 살고 싶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내 땅을 넓게 가지려 하기보다는
빈 터마다 은은한 백향목을 심으며 살고 싶다.
나무향을 맡으며 때로 감동하여 풀밭에라도 펄쩍 누우면
하늘빛 푸르름이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내를 이루어 흐르는 물 위에는 기쁨이 출렁거리는데.
한 몇 십 년 살아가는 게 이렇게 고마운 것이라면
살며 살며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詩) 이동진
세상을 향한 작은 외침
텍스트 큐브로 이사왔어요..
2006년 5월 26일 금요일
엄마의 강 (이철환)
이철환 님 | <연탄길> 저자
이른 새벽, 곤한 잠에서 깬 분홍이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다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얼굴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한 까맣고 둥그런 물안경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분홍이는 곧 장독대 옆에 놓여 있던 소쿠리 하나를 챙긴 뒤 조심스럽게 사립문을 열고 마을 앞 샛강으로 향했다. 며칠 전 큰비가 와서인지 마을 앞 샛강엔 평소보다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웃 마을 다슬기 방죽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는 흐릿하게나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다슬기 방죽에는 진녹색의 다슬기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푸른 물이 더욱더 푸르게 보였고 만지면 금방이라도 손끝에 푸른 물이 들 것만 같았다. 분홍이는 우선 입고 있던 바지를 한껏 올려붙였다. 그리고 가져온 낡은 물안경을 얼굴 전체에 덮어쓰고 허벅지까지 차는 물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분홍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 속에 깔려 있던 다슬기들을 잡기 시작했다.
다슬기들이 한 주먹 모아지자 “푸!”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잡은 다슬기들을 소쿠리에 담았다. 워낙 다슬기가 많아서인지 소쿠리 하나를 채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분홍이는 기대 이상의 성과에 만족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안고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음매’ 하는 송아지의 앳된 울음소리가 철구네 집 쪽에서 들려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집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분홍이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직 개어 놓지 않은 자신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일찍 일어났던 탓인지 눈꺼풀이 저절로 무겁게 내려왔다. 안방에서 엄마의 쓸쓸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 나왔다.
“오늘은 물이 좀 빠졌을 테니 요 앞 물가에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가난을 평생 등에 지고 살아온 엄마의 지친 목소리였다.
“내가 어서 일어나야 할 텐데…, 무릎도 시원치 않은 사람을 이렇게 고생만 시키고 있으니…, 쯧쯧.”
아빠의 서글프고 푸념 어린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잦은 기침 소리와 함께 나지막이 들려왔다. 잠시 뒤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엄마가 사립문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쯤 강 쪽으로 펼쳐져 있는 올망졸망한 논배미들을 가로질러 애기바위 쪽으로 향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분홍이의 마음은 왠지 편치 않았다. 아빠가 병을 얻은 뒤부터 엄마의 얼굴에 부쩍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분홍이는 다슬기를 잡아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엄마를 돕고 싶었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어린 딸이 다슬기 잡는 일만은 한사코 말리던 엄마였다. 무릎 관절이 아파 한쪽 다리는 제대로 구부리지도 못한 채 폭 꺼진 두 눈으로 힘들게 다슬기를 잡는 엄마를 보면 분홍이는 늘 가슴이 아팠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분홍이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지금쯤 마을 앞 샛강에 깔려 있는 수많은 다슬기들을 잡으며 한없이 기뻐할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다슬기들은 다름 아닌 이른 새벽 분홍이가 이웃 마을 다슬기 방죽에서 잡아다 엄마가 늘 가는 애기바위 근처에 몰래 뿌려 놓은 것들이었다. ‘내일도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분홍이는 문득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어떤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이라 부르는 설레임이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 밖으로 따뜻한 초록 바람이 지나갔다.
이른 새벽, 곤한 잠에서 깬 분홍이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다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얼굴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한 까맣고 둥그런 물안경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분홍이는 곧 장독대 옆에 놓여 있던 소쿠리 하나를 챙긴 뒤 조심스럽게 사립문을 열고 마을 앞 샛강으로 향했다. 며칠 전 큰비가 와서인지 마을 앞 샛강엔 평소보다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웃 마을 다슬기 방죽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는 흐릿하게나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다슬기 방죽에는 진녹색의 다슬기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푸른 물이 더욱더 푸르게 보였고 만지면 금방이라도 손끝에 푸른 물이 들 것만 같았다. 분홍이는 우선 입고 있던 바지를 한껏 올려붙였다. 그리고 가져온 낡은 물안경을 얼굴 전체에 덮어쓰고 허벅지까지 차는 물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분홍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 속에 깔려 있던 다슬기들을 잡기 시작했다.
다슬기들이 한 주먹 모아지자 “푸!”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잡은 다슬기들을 소쿠리에 담았다. 워낙 다슬기가 많아서인지 소쿠리 하나를 채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분홍이는 기대 이상의 성과에 만족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안고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음매’ 하는 송아지의 앳된 울음소리가 철구네 집 쪽에서 들려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집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분홍이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직 개어 놓지 않은 자신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일찍 일어났던 탓인지 눈꺼풀이 저절로 무겁게 내려왔다. 안방에서 엄마의 쓸쓸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 나왔다.
“오늘은 물이 좀 빠졌을 테니 요 앞 물가에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가난을 평생 등에 지고 살아온 엄마의 지친 목소리였다.
“내가 어서 일어나야 할 텐데…, 무릎도 시원치 않은 사람을 이렇게 고생만 시키고 있으니…, 쯧쯧.”
아빠의 서글프고 푸념 어린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잦은 기침 소리와 함께 나지막이 들려왔다. 잠시 뒤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엄마가 사립문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쯤 강 쪽으로 펼쳐져 있는 올망졸망한 논배미들을 가로질러 애기바위 쪽으로 향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분홍이의 마음은 왠지 편치 않았다. 아빠가 병을 얻은 뒤부터 엄마의 얼굴에 부쩍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분홍이는 다슬기를 잡아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엄마를 돕고 싶었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어린 딸이 다슬기 잡는 일만은 한사코 말리던 엄마였다. 무릎 관절이 아파 한쪽 다리는 제대로 구부리지도 못한 채 폭 꺼진 두 눈으로 힘들게 다슬기를 잡는 엄마를 보면 분홍이는 늘 가슴이 아팠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분홍이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지금쯤 마을 앞 샛강에 깔려 있는 수많은 다슬기들을 잡으며 한없이 기뻐할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다슬기들은 다름 아닌 이른 새벽 분홍이가 이웃 마을 다슬기 방죽에서 잡아다 엄마가 늘 가는 애기바위 근처에 몰래 뿌려 놓은 것들이었다. ‘내일도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분홍이는 문득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어떤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이라 부르는 설레임이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 밖으로 따뜻한 초록 바람이 지나갔다.
아버지와 팔찌 (이호영)
우리 아버지는 목수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로 접어들자 나는 항상 땀에 절은 옷에 거친 말투를 쓰시는 아버지가 부끄러워졌다. 학교 갔다 오면 항상 집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음악을 트는가 하면 늦게까지 놀다 들어오곤 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 마주칠 때면 돈을 던져 주며 “써라!” 하셨다.
고등학교는 괜한 자존심에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들 따라 예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결국 적응을 못하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한 달에 50만 원이나 들었다. 동생도 중학생이어서 우리집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힘써 주신 덕에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올해 초 은행에서 업무용 수첩이 나와 아버지께 드렸더니 받자마자 방 한 구석으로 휙 던지셨다. 그런데 며칠 뒤 수첩을 하나 더 달라고 하셔서 한 사람에 하나씩이라 동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하나 더 구해 드렸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내 방 문을 살짝 여시더니 “용돈 필요하지?” 하고는 돈을 방바닥에 던지고 문을 꽝 닫으셨다. 다음날, 엄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가 밖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딸 은행 다닌다고 자랑을 하신단다. 수첩도 우리 딸 은행에서 나온 거라고 생색내며 주고 싶어 필요하셨던 거란다.
용돈을 주시고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워 따스한 말 대신 고함을 치시는 분, 그것이 우리 아버지만의 사랑표현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얼마 뒤 아버지가 약주를 하고 오셔서는 작은 상자를 내미셨다. 팔찌였다. “니 맘에 들지, 어쩔지…. 우리 딸 은행 다니는데, 화려한 건 안 되고 수수한 걸로 달라고 했다.” 금세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들킬까 봐 “팔찌가 다 똑같지 뭐” 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곰살가운 애정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아버지 딸인가 보다.
(이호영)
고등학교는 괜한 자존심에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들 따라 예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결국 적응을 못하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한 달에 50만 원이나 들었다. 동생도 중학생이어서 우리집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힘써 주신 덕에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올해 초 은행에서 업무용 수첩이 나와 아버지께 드렸더니 받자마자 방 한 구석으로 휙 던지셨다. 그런데 며칠 뒤 수첩을 하나 더 달라고 하셔서 한 사람에 하나씩이라 동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하나 더 구해 드렸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내 방 문을 살짝 여시더니 “용돈 필요하지?” 하고는 돈을 방바닥에 던지고 문을 꽝 닫으셨다. 다음날, 엄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가 밖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딸 은행 다닌다고 자랑을 하신단다. 수첩도 우리 딸 은행에서 나온 거라고 생색내며 주고 싶어 필요하셨던 거란다.
용돈을 주시고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워 따스한 말 대신 고함을 치시는 분, 그것이 우리 아버지만의 사랑표현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얼마 뒤 아버지가 약주를 하고 오셔서는 작은 상자를 내미셨다. 팔찌였다. “니 맘에 들지, 어쩔지…. 우리 딸 은행 다니는데, 화려한 건 안 되고 수수한 걸로 달라고 했다.” 금세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들킬까 봐 “팔찌가 다 똑같지 뭐” 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곰살가운 애정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아버지 딸인가 보다.
(이호영)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
산동네의 골목길에서 나는 자랐다.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구멍 숭숭한 블록담에 기대어 햇살을 쬐면서 유년을 보냈다. 공동변소와 공동수도가 있는 그 산동네의 햇살들은 은관악기 위에 내린 듯 맑고 투명했다. 늘 춥고 배고팠기 때문에 햇살은 더 눈부셨으리라.
까치발로 그 담 너머 많은 세상을 보았다. 깨어진 블록담과 우리들의 낙서 위로 달팽이의 길이 남아 반짝이곤 했다. 담 밑에 앉아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기도 했고 담에 기대어 숨바꼭질 술래도 많이 했다.
서로의 저녁반찬 냄새를 맡아 가며 그 집의 월급날을 눈치채었고, 지난 밤에 누가 오줌을 쌌는지도 금세 알았다. 한 집에서 싸움이 나면 온 동네가 다 시끄러웠다. 그러면서 날마다 흰 빨래들이 눈부시게 널리던 그 골목길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기대는 법을 익혔다.
이제 길들을 잃어버렸다. 햇살은 그때만큼 눈부시지 않다. 그 남루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지금에서야 가슴 저린다.
모든 길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들은 기웃대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낯선 얼굴들이 서로 민망하다. 서로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하늘이 보이는 쪽창>, 김경복
********************************
출근길,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서울살이 시작할 때부터 제 옷들 말끔히 드라이세탁해 주시는 세탁소 아저씨, 순대랑 떡볶이를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맛으로 요리해 내시는 떡볶이 집 아주머니, 제 몸이 늘었다 줄었다 할 때마다 치마며 바지 딱 맞게 고쳐 주시는 옷수선집 아주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셨는지 벌써부터 일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채소 가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장사 준비를 하시고, 맛있는 과일만 갖다 놓으셔서 살 때부터 과일 단내가 입에 확! 퍼지는 과일집 아주머니는 아직 잠이 묻은 얼굴로 과일을 진열장에 내놓으십니다.
회사로 가기 위한 마지막 횡단보다 저편에는 날마다 저희 사무실로 우유며 요구르트를 갖다 주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벌써부터 저를 알아보시고 이쪽편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드디어 회사 앞, <농심식품>이라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웃음이 편안한 노부부가 계십니다. 아침마다 가게 밖 툇마루에 앉아 밤도 까고 마늘도 까시지요. 그런데 얼마 전 아저씨 안색이 안 좋으시다 싶더니 벌써 며칠 전부터 가게 문이 꽁꽁 닫혀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아침마다 이 모든 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분들과 한마디 한마디 인사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열립니다.
그래서 회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하루`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제가 늘 웃는 비결, 거기에 있답니다.
<모든 길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들은 기웃대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낯선 얼굴들이 서로 민망하다. 서로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빠르게 달리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
서로 좀 기웃대고 머뭇거리며 짧은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합니다.
낯선 얼굴이라고요?
아니지요. 이 넓은 세상에서 그 수많은 사람중에 얼굴 마주치는 일이 어디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하물며 날마다 마주친다고 하는 데에야….
까치발로 그 담 너머 많은 세상을 보았다. 깨어진 블록담과 우리들의 낙서 위로 달팽이의 길이 남아 반짝이곤 했다. 담 밑에 앉아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기도 했고 담에 기대어 숨바꼭질 술래도 많이 했다.
서로의 저녁반찬 냄새를 맡아 가며 그 집의 월급날을 눈치채었고, 지난 밤에 누가 오줌을 쌌는지도 금세 알았다. 한 집에서 싸움이 나면 온 동네가 다 시끄러웠다. 그러면서 날마다 흰 빨래들이 눈부시게 널리던 그 골목길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기대는 법을 익혔다.
이제 길들을 잃어버렸다. 햇살은 그때만큼 눈부시지 않다. 그 남루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지금에서야 가슴 저린다.
모든 길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들은 기웃대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낯선 얼굴들이 서로 민망하다. 서로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하늘이 보이는 쪽창>, 김경복
********************************
출근길,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서울살이 시작할 때부터 제 옷들 말끔히 드라이세탁해 주시는 세탁소 아저씨, 순대랑 떡볶이를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맛으로 요리해 내시는 떡볶이 집 아주머니, 제 몸이 늘었다 줄었다 할 때마다 치마며 바지 딱 맞게 고쳐 주시는 옷수선집 아주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셨는지 벌써부터 일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채소 가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장사 준비를 하시고, 맛있는 과일만 갖다 놓으셔서 살 때부터 과일 단내가 입에 확! 퍼지는 과일집 아주머니는 아직 잠이 묻은 얼굴로 과일을 진열장에 내놓으십니다.
회사로 가기 위한 마지막 횡단보다 저편에는 날마다 저희 사무실로 우유며 요구르트를 갖다 주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벌써부터 저를 알아보시고 이쪽편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드디어 회사 앞, <농심식품>이라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웃음이 편안한 노부부가 계십니다. 아침마다 가게 밖 툇마루에 앉아 밤도 까고 마늘도 까시지요. 그런데 얼마 전 아저씨 안색이 안 좋으시다 싶더니 벌써 며칠 전부터 가게 문이 꽁꽁 닫혀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아침마다 이 모든 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분들과 한마디 한마디 인사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열립니다.
그래서 회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하루`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제가 늘 웃는 비결, 거기에 있답니다.
<모든 길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들은 기웃대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낯선 얼굴들이 서로 민망하다. 서로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빠르게 달리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
서로 좀 기웃대고 머뭇거리며 짧은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합니다.
낯선 얼굴이라고요?
아니지요. 이 넓은 세상에서 그 수많은 사람중에 얼굴 마주치는 일이 어디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하물며 날마다 마주친다고 하는 데에야….
엄지의 힘!
열쇠로 문 열 때 열쇠 꼭 잡기,
양말 벗을 때 양말 단 꼭 잡기,
옷 벗을 때 단추 풀기,
양치할 때 네 손가락이 미는 힘 받쳐 주기,
젓가락질하기,
밥그릇 잡기,
가방 지퍼 손잡이 검지랑 잡고 힘 주어 닫기,
컵 들 때 손잡이 윗부분 눌러 주어 힘의 균형 맞추기,
전화기 잡기,
문서 집게로 찝을 때 집게 열기,
컴퓨터 자판 스페이스 키와 쉬프트 키 누르기
전화기 떨어뜨리지 않게 잘 잡기
무엇보다 연필 잡기
……
이 외에도 엄지가 하는 일은 정말 많겠지요?
느닷없이 무슨 이야기인가 하시겠네요.
제가 어제 오이를 깎다가 오른쪽 엄지손가락 지문 있는 부분을 베었습니다. 한 2cm 정도 길이로 난 작은 상처로, 피가 `찔끔찔끔` 새어 나올 정도여서 1회용밴드를 붙였다 괜히 유난 떤다 싶어 떼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 외로 `아프다`고 유난을 떱니다. 어제 퇴근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아후, 아퍼!>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엄지라는 녀석이 얼마나 하는 일이 많은지. 나머지 네 손가락이 가진 힘이 아무리 세도 그 힘을 받치면서 조절해 주는 엄지가 없으면 그 힘이 아무리 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좀 거창한 듯싶지만 엄지의 작은 상처로, 몸이 불편한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겪은 불편은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요….
양말 벗을 때 양말 단 꼭 잡기,
옷 벗을 때 단추 풀기,
양치할 때 네 손가락이 미는 힘 받쳐 주기,
젓가락질하기,
밥그릇 잡기,
가방 지퍼 손잡이 검지랑 잡고 힘 주어 닫기,
컵 들 때 손잡이 윗부분 눌러 주어 힘의 균형 맞추기,
전화기 잡기,
문서 집게로 찝을 때 집게 열기,
컴퓨터 자판 스페이스 키와 쉬프트 키 누르기
전화기 떨어뜨리지 않게 잘 잡기
무엇보다 연필 잡기
……
이 외에도 엄지가 하는 일은 정말 많겠지요?
느닷없이 무슨 이야기인가 하시겠네요.
제가 어제 오이를 깎다가 오른쪽 엄지손가락 지문 있는 부분을 베었습니다. 한 2cm 정도 길이로 난 작은 상처로, 피가 `찔끔찔끔` 새어 나올 정도여서 1회용밴드를 붙였다 괜히 유난 떤다 싶어 떼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 외로 `아프다`고 유난을 떱니다. 어제 퇴근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아후, 아퍼!>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엄지라는 녀석이 얼마나 하는 일이 많은지. 나머지 네 손가락이 가진 힘이 아무리 세도 그 힘을 받치면서 조절해 주는 엄지가 없으면 그 힘이 아무리 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좀 거창한 듯싶지만 엄지의 작은 상처로, 몸이 불편한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겪은 불편은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요….
눈앞에서 먼 당신 (김기린)
눈앞에서 먼 당신
하루가 우리를
맞이할 때
늘 같이 사는 사람아
밤이 우리를 맞을 때
늘 같이 자는 사람아
사는 목적이 같다 하고
죽을 때도 같이 죽자는
나를 빚어 놓은 사람아
가도 같이 가고
와도 거기 있는
나 같은 사람아
슬픔은 나누어 울고
기쁨은 함께 웃는
그림자 같은 사람아
자랑도 사는 동안 내 자랑이요
흉도 사는 동안 내 흉인 사람아
어느 날
다시 보면
눈앞에서 언제나
먼 당신아
어느 밤
만져 보면
눈앞에서 저만치
먼 당신아
그때마아
눈앞에서
먼 당신아.
하루가 우리를
맞이할 때
늘 같이 사는 사람아
밤이 우리를 맞을 때
늘 같이 자는 사람아
사는 목적이 같다 하고
죽을 때도 같이 죽자는
나를 빚어 놓은 사람아
가도 같이 가고
와도 거기 있는
나 같은 사람아
슬픔은 나누어 울고
기쁨은 함께 웃는
그림자 같은 사람아
자랑도 사는 동안 내 자랑이요
흉도 사는 동안 내 흉인 사람아
어느 날
다시 보면
눈앞에서 언제나
먼 당신아
어느 밤
만져 보면
눈앞에서 저만치
먼 당신아
그때마아
눈앞에서
먼 당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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