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6일 금요일

아버지와 팔찌 (이호영)

우리 아버지는 목수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로 접어들자 나는 항상 땀에 절은 옷에 거친 말투를 쓰시는 아버지가 부끄러워졌다. 학교 갔다 오면 항상 집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음악을 트는가 하면 늦게까지 놀다 들어오곤 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 마주칠 때면 돈을 던져 주며 “써라!” 하셨다.

고등학교는 괜한 자존심에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들 따라 예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결국 적응을 못하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한 달에 50만 원이나 들었다. 동생도 중학생이어서 우리집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힘써 주신 덕에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다.

올해 초 은행에서 업무용 수첩이 나와 아버지께 드렸더니 받자마자 방 한 구석으로 휙 던지셨다. 그런데 며칠 뒤 수첩을 하나 더 달라고 하셔서 한 사람에 하나씩이라 동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하나 더 구해 드렸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내 방 문을 살짝 여시더니 “용돈 필요하지?” 하고는 돈을 방바닥에 던지고 문을 꽝 닫으셨다. 다음날, 엄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가 밖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딸 은행 다닌다고 자랑을 하신단다. 수첩도 우리 딸 은행에서 나온 거라고 생색내며 주고 싶어 필요하셨던 거란다.

용돈을 주시고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워 따스한 말 대신 고함을 치시는 분, 그것이 우리 아버지만의 사랑표현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얼마 뒤 아버지가 약주를 하고 오셔서는 작은 상자를 내미셨다. 팔찌였다. “니 맘에 들지, 어쩔지…. 우리 딸 은행 다니는데, 화려한 건 안 되고 수수한 걸로 달라고 했다.” 금세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들킬까 봐 “팔찌가 다 똑같지 뭐” 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곰살가운 애정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아버지 딸인가 보다.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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