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테스트의 7가지 방법
카피테스트의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시청률(리더십) 조사 :신문·잡지 등의 광고물을 어느 정도 보았는가를 조사한다.
② 순위법 :조사하고자 하는 광고카피를 몇 가지 준비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차례로 상대방에게 순위를 매기게 한다.
③ 한쌍비교법 :두 장의 카피를 보여주고 어느 쪽이 좋은지 선택하도록 한다.
④ 평정법(評定法) :조사할 카피를 보이고 몇 가지 소정(所定)의 척도에서 평가시킨다.
⑤ 아이카메라법 :카피를 상대방이 보았을 때의 안구운동이라든가 동공의 확대·수축의 상황 등을 카메라로 기록하여, 메시지의 힘을 판정한다.
⑥ 조회법(照會法) :광고에 쿠폰을 붙여 놓고, 반송량으로써 카피를 평가한다.
⑦ 스프리트 런법(法) :동일 광고매체에, 일부만 다르고 거의 똑같은 두 가지 테스트 광고를 분할게재하여, 자료 요청량의 다소로써 어느 광고물이 더 효과적인가를 판정한다.
2005년 9월 21일 수요일
2005년 9월 19일 월요일
남산 달맞이

명절이 짧기도 하고 나름대로 할것도 있었고 해서 핑계아닌 핑계를 만들어 내려가지 않았는데 어제저녁 선배님이 달맞이 가자고 해서 한번 가 봤습니다.
명절에 시골에 안내려 가보기는 이번이 처음인거 같습니다.
구름 사이로 가려서 쉽게 보지 못할거 같았는데 휘엉청 밝은 달이 참 보기 좋더라구요..
어린마음으로 돌아가 살포시 작은 소원을 빌고 내려오는 길
은은히 밝혀주는 달빛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다시금 작은 소원을 되뇌이게 됩니다.
꼭 이룰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여러분도 저 달 보면서 작은 소원 한가지씩 빌어 보세요~
2005년 9월 18일 일요일
21세기 아이디어맨 57가지 비법
건강과 휴식은 아이디어의 밑천
1. 쉬고 싶을 때는 만사를 잊고 쉰다.
2. 오락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웃는다.
3. 슬픈 영화를 보고 마음껏 운다.
4. 싸울 때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운다.
5. 아침 저녁 산책을 즐긴다.
6. 무엇이든 잘 먹는다.
7. 건강을 위해 운동 한가지는 꾸준히 한다.
8. 잠을 깊이 잔다.
9. 방의 구조나 가구배치를 자주 바꾼다.
상식, 그런 거에 얽매이지 말자.
10.항상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생각한다.
11.돈은 버는 대로 아낌없이 쓴다.
12.세상이 얕보는 허드렛일을 해 본다.
13.내일 자신이 죽는 다고 가정한다.
14.부모로부터 독립한다.
15.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16.남들 다 아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17.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18.평범한 것을 거부해본다.
19.별것이 아닌 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세상의 정보는 다 내 꺼!
20.어린이들과 친하게 사귄다.
21.항상 바쁘게 미친 듯이 쏘다닌다.
22.좋은 아이디어는 즉석에서 메모한다.
23.정신없이 떠들어 본다.
24.노인들의 지혜를 소중히 한다.
25.컴퓨터/정보잡지를 한가지 이상 구독한다.
26.전시장이나 강좌에는 제일 먼저 찾는다.
27.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다.
28.외국친구들을 많이 사귄다.
29.세계 시사 잡지를 구독한다.
30.매일 신문을 구석구석 본다.
31.신문, 잡지 스크랩을 한다.
32.TV를 열심히 본다.
33.일주일에 한 권의 책, 한편의 영화는 꼭 본다.
34.수집이 취미다.
35.큰 가방을 들고 다닌다.
36.신상품 정보에 민감하다.
37.길의 포스터나 공고 등을 유심히 본다.
38.궁금한 것은 꼭 질문한다.
39.컴퓨터 조작이 자유롭다.
40.메모수첩 하나 정도는 항상 갖고 다닌다.
41.배우자의 장점을 배운다.
결단력은 강하게, 스케일은 크게!
42.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본다.
43.선진국의 유행을 맨 먼저 도입한다.
44.돈없이 해외여행을 즐긴다.
45.승산없는 일은 과감히 때려 치운다.
46.백만장자가 되기로 작정한다.
자기대비는 철저히!
47.자유직업을 선택해 본다.
48.다양한 직업을 해 본다.
49.자신을 인정해 주는 상사가 있는 직장에 오래 있는다.
50.뜻밖의 행운에 항상 대비한다.
51.심리학에 통달한다.
52.화합이 불가능한 일을 절충시켜본다.
53.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위로할 줄 안다.
54.외국어 하나는 완벽하게 해야 한다.
55.시간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56.비웃거나 조롱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57.언제나 배우는 것이 있다.
1. 쉬고 싶을 때는 만사를 잊고 쉰다.
2. 오락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웃는다.
3. 슬픈 영화를 보고 마음껏 운다.
4. 싸울 때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운다.
5. 아침 저녁 산책을 즐긴다.
6. 무엇이든 잘 먹는다.
7. 건강을 위해 운동 한가지는 꾸준히 한다.
8. 잠을 깊이 잔다.
9. 방의 구조나 가구배치를 자주 바꾼다.
상식, 그런 거에 얽매이지 말자.
10.항상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생각한다.
11.돈은 버는 대로 아낌없이 쓴다.
12.세상이 얕보는 허드렛일을 해 본다.
13.내일 자신이 죽는 다고 가정한다.
14.부모로부터 독립한다.
15.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16.남들 다 아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17.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18.평범한 것을 거부해본다.
19.별것이 아닌 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세상의 정보는 다 내 꺼!
20.어린이들과 친하게 사귄다.
21.항상 바쁘게 미친 듯이 쏘다닌다.
22.좋은 아이디어는 즉석에서 메모한다.
23.정신없이 떠들어 본다.
24.노인들의 지혜를 소중히 한다.
25.컴퓨터/정보잡지를 한가지 이상 구독한다.
26.전시장이나 강좌에는 제일 먼저 찾는다.
27.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다.
28.외국친구들을 많이 사귄다.
29.세계 시사 잡지를 구독한다.
30.매일 신문을 구석구석 본다.
31.신문, 잡지 스크랩을 한다.
32.TV를 열심히 본다.
33.일주일에 한 권의 책, 한편의 영화는 꼭 본다.
34.수집이 취미다.
35.큰 가방을 들고 다닌다.
36.신상품 정보에 민감하다.
37.길의 포스터나 공고 등을 유심히 본다.
38.궁금한 것은 꼭 질문한다.
39.컴퓨터 조작이 자유롭다.
40.메모수첩 하나 정도는 항상 갖고 다닌다.
41.배우자의 장점을 배운다.
결단력은 강하게, 스케일은 크게!
42.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본다.
43.선진국의 유행을 맨 먼저 도입한다.
44.돈없이 해외여행을 즐긴다.
45.승산없는 일은 과감히 때려 치운다.
46.백만장자가 되기로 작정한다.
자기대비는 철저히!
47.자유직업을 선택해 본다.
48.다양한 직업을 해 본다.
49.자신을 인정해 주는 상사가 있는 직장에 오래 있는다.
50.뜻밖의 행운에 항상 대비한다.
51.심리학에 통달한다.
52.화합이 불가능한 일을 절충시켜본다.
53.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위로할 줄 안다.
54.외국어 하나는 완벽하게 해야 한다.
55.시간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56.비웃거나 조롱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57.언제나 배우는 것이 있다.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영랑 생가를 찾아서
여행이라는 것은 비단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즐거운 것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시절 전국의 많은 지역을 다녀봤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을 다 다녀 봤는데 제주도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다녀오질 못했다.
아무튼 수학여행 졸업여행 이런것을 제외하고 나를 한번 돌아보고 여행만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여행은 이번 강진행이 처음이다.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전라남도 강진.
여기가 바로 지금까지 내 생에 있어서 처음행하는 여행이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 봤던 여행이다.
저녁 무렵 도착한 강진에서 가장먼저 찾은 곳은 영랑생가.
이곳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터미널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적당히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 가장 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이다.
여느 가옥과는 별 다른 점은 없었지만 샘터와 장독대가 복원되어 있어 옛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연을 담아 글을 쓰기에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인다.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살포시~~
영랑생가 전경

시비와 함께~~


안채에 있는 영랑 마네킹

가장 맘에 들었던 우물터


영랑생가를 나오면서...
강진 이야기는 쭈욱 계속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시절 전국의 많은 지역을 다녀봤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을 다 다녀 봤는데 제주도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다녀오질 못했다.
아무튼 수학여행 졸업여행 이런것을 제외하고 나를 한번 돌아보고 여행만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여행은 이번 강진행이 처음이다.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전라남도 강진.
여기가 바로 지금까지 내 생에 있어서 처음행하는 여행이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 봤던 여행이다.
저녁 무렵 도착한 강진에서 가장먼저 찾은 곳은 영랑생가.
이곳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터미널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적당히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 가장 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이다.
여느 가옥과는 별 다른 점은 없었지만 샘터와 장독대가 복원되어 있어 옛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연을 담아 글을 쓰기에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인다.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살포시~~

영랑생가 전경

시비와 함께~~


안채에 있는 영랑 마네킹

가장 맘에 들었던 우물터


영랑생가를 나오면서...
강진 이야기는 쭈욱 계속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생가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의 시인 김영랑(1903∼1950)의 생가.
지정번호 전남기념물 제89호
지정연도 1986년 2월 17일
소재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
시대 한말
면적 4,422㎡
분류 생가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진군에서 관리한다.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제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였고,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제야(除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935년에는 첫번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하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죽었다.
영랑생가는 현재 본채와 사랑채 2동만이 남아 있고 주변 모란밭을 포함한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 팔작지붕이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을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고, 기단부와 벽체는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잃어버렸다. 좌측 2칸은 전면에 유리창문을 달았고, 우측 3칸은 전면에 마루를 달았으며 3칸 모두가 방이다. 기둥은 사각의 방주이고 상량문에 ‘광무십년 병오사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 이 집의 건립 연대가 1906년이라고 알려준다.
본채에서 10여 m 떨어진 왼쪽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기와는 고와이며, 1930년대 건물로 전해지는데 본채보다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사랑채의 특징은 전면과 양칸에 ‘ㄷ’자형으로 마루를 깔았으며, 우측 1칸에는 마루 앞에 낮은 난간을 설치하였다. 창문은 이중창문으로 안쪽 창은 밀창으로 되어 있다.
지정번호 전남기념물 제89호
지정연도 1986년 2월 17일
소재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
시대 한말
면적 4,422㎡
분류 생가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진군에서 관리한다.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제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였고,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제야(除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935년에는 첫번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하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죽었다.
영랑생가는 현재 본채와 사랑채 2동만이 남아 있고 주변 모란밭을 포함한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 팔작지붕이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을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고, 기단부와 벽체는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잃어버렸다. 좌측 2칸은 전면에 유리창문을 달았고, 우측 3칸은 전면에 마루를 달았으며 3칸 모두가 방이다. 기둥은 사각의 방주이고 상량문에 ‘광무십년 병오사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 이 집의 건립 연대가 1906년이라고 알려준다.
본채에서 10여 m 떨어진 왼쪽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기와는 고와이며, 1930년대 건물로 전해지는데 본채보다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사랑채의 특징은 전면과 양칸에 ‘ㄷ’자형으로 마루를 깔았으며, 우측 1칸에는 마루 앞에 낮은 난간을 설치하였다. 창문은 이중창문으로 안쪽 창은 밀창으로 되어 있다.
2005년 9월 8일 목요일
포고령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북위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지 1달 만인 9월 8일 미국 점령군이 인천에 상륙하면서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관 맥아더의 이름으로 발한 포고령 제1호이다.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관 맥아더 포고령 제1호>
조선인민에게 고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항복은 우 제국(諸國) 군대간에 오랫동안 속행되어온 무력투쟁을 끝냈다. 일본천황의 명령에 의하여 그를 대표하여 일본국 정부와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 내용에 의하여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인민은 점령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들의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히 확신하여야 한다.
태평양방면 미국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나는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건을 발표한다.
제1조.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권한은 당분간 나의 권하하에서 시행한다.
제2조. 정부의 전 공공(公共)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有給)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의 정당한 기능과 의무를 실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제3조. 모든 사람은 급속히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권한하에 발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부대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혹은 공공안녕을 문란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제4조. 제군(諸君)의 재산소유 권리는 존중하겠다. 제군은 내가 명랑할 때까지 제군의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라.
제5조. 군사적 관리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목적을 위하여서 영어가 공식언어이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혹은 일본어 원문간에 해석 혹은 정의에 관하여 어떤 애매한 점이 있거나 부동(不同)한 점이 있을 때에는 영어 원문이 적용된다.
제6조. 새로운 포고, 포고규정 공고, 지령 및 법령은 나 혹은 나의 권한하에서 발출(發出)될 것으로 제군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를 지정할 것이다.
1945년 9월 9일
태평양방면 미국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관 맥아더 포고령 제1호>
조선인민에게 고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항복은 우 제국(諸國) 군대간에 오랫동안 속행되어온 무력투쟁을 끝냈다. 일본천황의 명령에 의하여 그를 대표하여 일본국 정부와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 내용에 의하여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조선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인민은 점령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들의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히 확신하여야 한다.
태평양방면 미국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나는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건을 발표한다.
제1조.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권한은 당분간 나의 권하하에서 시행한다.
제2조. 정부의 전 공공(公共) 및 명예직원과 사용인 및 공공복지와 공공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 기관의 유급(有給) 혹은 무급 직원 및 사용인과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기타의 모든 사람은 새로운 명령이 있을 때까지 그의 정당한 기능과 의무를 실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제3조. 모든 사람은 급속히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권한하에 발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부대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혹은 공공안녕을 문란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제4조. 제군(諸君)의 재산소유 권리는 존중하겠다. 제군은 내가 명랑할 때까지 제군의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라.
제5조. 군사적 관리를 하는 동안에는 모든 목적을 위하여서 영어가 공식언어이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혹은 일본어 원문간에 해석 혹은 정의에 관하여 어떤 애매한 점이 있거나 부동(不同)한 점이 있을 때에는 영어 원문이 적용된다.
제6조. 새로운 포고, 포고규정 공고, 지령 및 법령은 나 혹은 나의 권한하에서 발출(發出)될 것으로 제군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를 지정할 것이다.
1945년 9월 9일
태평양방면 미국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강점 60년 입니다.
바로 오늘이 점령군 미군 맥아더가 인천땅을 밟고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한지 60년이 되는 날입니다.
너무나 많은 살인과 사고를 저질렀지만 그 어떤것 하나도 우리가 제대로 판결내지 못했습니다.
미군강점 60년을 더이상 넘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05년 9월 7일 수요일
추모연대 수련회
추모연대 수련회가 지난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안동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올립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대히 바라봐 주시길...

자 지금부터 달려 볼까요~~

강연해 주시는 통일광장 권낙기 선생님


오호~ 진지한 눈빛!! 번뜩!!





제가 축구좀 하죠~~ 다 붙어~~

어라 손이 저절로 가네~~ 눈독 들이지 마세용!!

먼가 의지가 불타긴 한데 손에든건....

찍히고 있다는걸 알랑가 몰라!~

울 귀염둥이 민석이 찰칵!!

숙소를 떠나기 전

올만에 본 선배~~ 공개애인구함모드 입니다.연락 주세요
처음봤을때랑 전혀 변함없는 선배

어라 차도 사브렀넹~~ 돈점 버나보지 자자 저사람 잡으면 후회없슴당~~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남수선생님 생가에서

김영균열사 기념비





저 간판이 꼭 나와야 한다~~ 유명하다곤 했는데...
수련회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추모연대 분들 그리고 좋은 장소에서 맛난거 많이 준비해주신 김영균열사추모사업회 분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올립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대히 바라봐 주시길...

자 지금부터 달려 볼까요~~
더 많은 사진보기...









어라 손이 저절로 가네~~ 눈독 들이지 마세용!!

먼가 의지가 불타긴 한데 손에든건....

찍히고 있다는걸 알랑가 몰라!~

울 귀염둥이 민석이 찰칵!!

숙소를 떠나기 전

올만에 본 선배~~ 공개애인구함모드 입니다.연락 주세요
처음봤을때랑 전혀 변함없는 선배

어라 차도 사브렀넹~~ 돈점 버나보지 자자 저사람 잡으면 후회없슴당~~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남수선생님 생가에서

김영균열사 기념비





저 간판이 꼭 나와야 한다~~ 유명하다곤 했는데...
수련회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추모연대 분들 그리고 좋은 장소에서 맛난거 많이 준비해주신 김영균열사추모사업회 분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2005년 9월 5일 월요일
즐거운 편지

선풍기가 없이는 잠을 못잘거 같던 밤이 지나고 이제는 두품한 이불을 끌어안고 자야하는 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느덧 가을이 오고 이제 남은 달도 몇달 남지 않은 시간들...
시간의 흐름을 어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을이 즐거운 것은
따뜻한 사람의 체온을 좀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 우편함에 들어있는 편지 한통을 꺼내 들었다.
늘 고지서만 있던 자리에 있는 편지가 이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어느공간에서 편지를 쓰고 어떤 느낌으로 썼을지 금방 알 수 있을 만큼의 온기가 느껴지는 편지.
이런 편지 받아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이 한통의 즐거운 편지로 인해 하루를 버티고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는 날이다.
2005년 9월 2일 금요일
버려지는 유물들...

이탑은 법흥동 고성이씨 법흥택앞에 세워져 있는 7층전탑 국보 16호.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벽돌탑)으로 통일 신라시대인 8세기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고 있습니다.
원래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및 상륜부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 탑두는 노반에 남아 있고 상륜부는 모두 유실 되어있는 상태다.
이 탑이 국보임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제 탑은 기울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바로 옆에 보이는 철길로 인해 탑에 균열이가고 있는 실정.
안타까운 것은 국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이 철로는 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탑 앞으로 길을 내었다고 하니 그것또한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해방이된지 어어너 60년이 된 상황에서도 국보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것은 국보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의심이 들 정도이다.
더욱 큰 문제는 탑이 기울어져가고 있는 것도 있지만 옆에 보이는 임청각(보물 182호) 기와의 색이 조금 달라 보이는 것처럼 철길에서 생기는 분진으로 인해 기와의 색이 붉은 색으로 바뀐 것이다.
해방이후 한번의 관심도 없이 지정된 국보와 보물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것이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보와 보물들이 일본의 잔재들에 의해 아직도 그 빛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늦었지만 발표된 친일인사명부를 보면서 진정한 과거청산의 길은 아직 멀었고 이제 그 시작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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