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전 카피라이팅이 뭔지도 모르고 부서에 배치 받았어요. 그러니까 일단 배울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나중에 제가 뽑는 입장이 돼서는 지적 능력을 가장 먼저 봤습니다. 왜냐하면 카피를 쓰고 광고를 만들려면 우선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호기심·자세·의지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카피라이터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문장들의 연결이 긴밀하게 유지되는 법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역시 본인이 스스로 배우는 겁니다. 저 역시 혼자 <뉴요커> 지를 읽고, 다른 사람들의 광고를 보면서 공부하고, 크리에이티브 연감들에서 카피를 읽고 기억하면서 배웠던 게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밥 레븐슨(Bob Levenson)의 카피를 읽고 외우면서 운율이나 리듬 같은 걸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소설도 그런 식으로 배우고 있거든요. 어쨌든 카피에 관한 거면 무조건 포악할 정도로 읽고 배우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카피라이터였을 때 카피 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책도 쓰지 않았습니다. 카피라이팅만이 유일한 관심사였지요. 다른 것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직 좋은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곳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카피는 일종의 오길비와 번벅의 아말감[합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제가 첨가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 생각엔 굳이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가져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흔히 사람들이 “이거 내가 한 거야, 혹은 내 꺼야”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고기를 잘라라’, 데이비드의 확고한 신념 중의 하나다. 카피가 길어야 된다, 혹은 짧아야 된다는 법칙은 없다. 적절하기만 하다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까지 쓰고 이야기를 다 했을 때가 바로 멈출 때라는 얘기다. 그에게 ‘단어들’이란 설득을 위한 봉사자들이며, 대체적으로 쉽고 심플하며 친근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광고에 내 삶이 녹아 있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을 넣을 수 있겠습니까?
AMV에는 문서로 돼 있지는 않지만 한 가지 철학이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담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요. 예전에 스태프 미팅을 할 때였습니다. 거기선 저도 의견을 말하는 한 사람이었지요. 우리가 믿는 것들, 그리고 우리 회사가 어떻게 행동했으면 하는 가를 얘기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책으로 만들어져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진 적은 없습니다. 아마 정직하고 화합하며, 일을 가장 우선 하자는 것들이 원칙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다른 분들도 인정하는 부분인데, 그건 우리가 우리의 원칙을 그대로 실천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린 큰 회사가 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아침에 출근하고 싶은 회사, 그리고 함께 일하는 게 즐겁고 프라이드를 갖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원했습니다.
광고회사에서의 재정적인 성공이란 어떻게 보면 좋은 광고를 만들겠다는 열정에 따라붙는 ‘보너스’라고 할 수 있지요. 빌 번벅이 그레이(Grey)사를 떠날 때가 49세였는데, 그 때 그가 썼던 편지를 한 번 읽어보세요. 그걸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돈을 좇아 회사를 떠났던 게 아니었어요. 정말 이런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과, 이런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본인의 회사를 차렸던 겁니다. 제가 투자자라면 이런 회사에 투자하고 싶을 겁니다.
우리는 늘 웃었습니다. 우울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우리는 회사가 나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신바람 나게 일했습니다. 임원들이 커다란 차나 타고 다니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내가 재미있게 일하느냐입니다. 깎고 다듬어내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시간들이 즐거운 일입니다. 구상을 하고, PT가 있으면 새벽 2, 3시까지 스튜디오에서 보내기도 하고, 카피를 쓰고, 회의를 하고, 광고주를 설득하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입니까. 전 되도록 재미없는 일은 피했습니다. 왜, 광고주 접대 같은 거 있잖아요. 대신 피터와 에이드리언이 좀 고생했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그리고 서로에 대해 관용을 가져야 해요.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구요. 서로가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회사에 나온 거잖아요. 누군가 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큰 차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했어요. 제가 원하는 건 차가 아니거든요. 누군가는 또 좀 긴 휴가를 원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냥 너그럽게 이해하면 그만입니다. 동업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집사람이나 애인보다 더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지는 일도 참 많습니다. 서로를 시기하기 때문이죠.
30여 년을 동고동락하며 세 사람이 한 회사를 잡음 없이 꾸려나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것도 광고회사를. 그러기에 AMV가 주는 교훈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다. 특히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해 몰이해한 우리 사회의 습성을 보면 말이다. 똘레랑스(tolerance)의 결여는 결국 야만의 얼굴을 한다.
데이비드는 2001년 크리에이티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다.
광고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늘 광고와 친하게 지냈을 뿐이에요. 하지만 광고 속엔 제 삶이 녹아 있습니다. 광고에 내 삶이 녹아 있지 않다면 도대체 그 광고 속에 무엇을 넣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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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면 글쓴이가 보이듯, 카피를 보면 카피라이터가 보인다. 얼마나 절실함이 담긴 카피인지, 얼마나 영혼이 담긴 카피인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데이비드 애벗(David Abbott)은 말한다.
“당신의 일 속에서 혼신을 다해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삶이 가르쳐준 생생한 카피를 써보세요.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그러면 가능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별로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말을 타협 없이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것도 일생을.
데이비드는 63년에 카피라이터로 입문해 DDB를 거쳐 본인이 세운 회사, AMV(Abbott Mead Vickers)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98년에 은퇴했다.
데이비드는 우리 시대 가장 존경받는 카피라이터로 첫손에 꼽히며 ‘품위 있는 설득의 대가’ 혹은 ‘long copy의 일인자’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리고 수많은 카피라이터들이 빌 번벅(Bill Bernbach; DDB 창시자, 폴크스바겐 비틀 캠페인 지휘)의 후예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빌 번벅의 유일한 적자는 오직 데이비드뿐’이라는 말로서 그의 위상을 되새겨 볼 수 있겠다.
요즘 데이비드는 소설을 쓰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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