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12일 월요일

영랑생가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의 시인 김영랑(1903∼1950)의 생가.

지정번호 전남기념물 제89호
지정연도 1986년 2월 17일
소재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
시대 한말
면적 4,422㎡
분류 생가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진군에서 관리한다.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3·1운동 때에는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제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였고,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제야(除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935년에는 첫번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하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6·25전쟁 때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은신하다가 파편에 맞아 죽었다.

영랑생가는 현재 본채와 사랑채 2동만이 남아 있고 주변 모란밭을 포함한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 팔작지붕이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을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고, 기단부와 벽체는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잃어버렸다. 좌측 2칸은 전면에 유리창문을 달았고, 우측 3칸은 전면에 마루를 달았으며 3칸 모두가 방이다. 기둥은 사각의 방주이고 상량문에 ‘광무십년 병오사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 이 집의 건립 연대가 1906년이라고 알려준다.

본채에서 10여 m 떨어진 왼쪽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기와는 고와이며, 1930년대 건물로 전해지는데 본채보다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사랑채의 특징은 전면과 양칸에 ‘ㄷ’자형으로 마루를 깔았으며, 우측 1칸에는 마루 앞에 낮은 난간을 설치하였다. 창문은 이중창문으로 안쪽 창은 밀창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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