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6일 금요일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

산동네의 골목길에서 나는 자랐다.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구멍 숭숭한 블록담에 기대어 햇살을 쬐면서 유년을 보냈다. 공동변소와 공동수도가 있는 그 산동네의 햇살들은 은관악기 위에 내린 듯 맑고 투명했다. 늘 춥고 배고팠기 때문에 햇살은 더 눈부셨으리라.

까치발로 그 담 너머 많은 세상을 보았다. 깨어진 블록담과 우리들의 낙서 위로 달팽이의 길이 남아 반짝이곤 했다. 담 밑에 앉아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기도 했고 담에 기대어 숨바꼭질 술래도 많이 했다.

서로의 저녁반찬 냄새를 맡아 가며 그 집의 월급날을 눈치채었고, 지난 밤에 누가 오줌을 쌌는지도 금세 알았다. 한 집에서 싸움이 나면 온 동네가 다 시끄러웠다. 그러면서 날마다 흰 빨래들이 눈부시게 널리던 그 골목길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기대는 법을 익혔다.

이제 길들을 잃어버렸다. 햇살은 그때만큼 눈부시지 않다. 그 남루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지금에서야 가슴 저린다.

모든 길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들은 기웃대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낯선 얼굴들이 서로 민망하다. 서로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하늘이 보이는 쪽창>, 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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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서울살이 시작할 때부터 제 옷들 말끔히 드라이세탁해 주시는 세탁소 아저씨, 순대랑 떡볶이를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맛으로 요리해 내시는 떡볶이 집 아주머니, 제 몸이 늘었다 줄었다 할 때마다 치마며 바지 딱 맞게 고쳐 주시는 옷수선집 아주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셨는지 벌써부터 일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채소 가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장사 준비를 하시고, 맛있는 과일만 갖다 놓으셔서 살 때부터 과일 단내가 입에 확! 퍼지는 과일집 아주머니는 아직 잠이 묻은 얼굴로 과일을 진열장에 내놓으십니다.

회사로 가기 위한 마지막 횡단보다 저편에는 날마다 저희 사무실로 우유며 요구르트를 갖다 주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벌써부터 저를 알아보시고 이쪽편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드디어 회사 앞, <농심식품>이라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웃음이 편안한 노부부가 계십니다. 아침마다 가게 밖 툇마루에 앉아 밤도 까고 마늘도 까시지요. 그런데 얼마 전 아저씨 안색이 안 좋으시다 싶더니 벌써 며칠 전부터 가게 문이 꽁꽁 닫혀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아침마다 이 모든 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분들과 한마디 한마디 인사를 나눌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열립니다.
그래서 회사에 도착할 때쯤이면 `하루`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제가 늘 웃는 비결, 거기에 있답니다.

<모든 길은 자꾸 넓어지고 사람들은 기웃대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낯선 얼굴들이 서로 민망하다. 서로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빠르게 달리고 있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

서로 좀 기웃대고 머뭇거리며 짧은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합니다.

낯선 얼굴이라고요?
아니지요. 이 넓은 세상에서 그 수많은 사람중에 얼굴 마주치는 일이 어디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하물며 날마다 마주친다고 하는 데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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